공간을 짓고, 경험을 설계하고, 브랜드의 믿음을 세우는 동안 한 가지 생각이 점점 분명해졌습니다. 디자인은 결과물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 잘 그린 도면도, 잘 짠 브랜드도, 결국 누군가 그것을 매일 운영하고 판단하면서 비로소 살아남습니다.
그래서 나는 디자인의 끝점을 더 뒤로 옮겼습니다. 무엇을 만들지가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방식 자체를 설계 대상으로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가장 보이지 않는 것, 조직이 일하는 구조를 디자인하는 일. 이 마지막 장은 그 이야기입니다.
디자인팀의 일도 처음에는 여느 팀처럼 흩어져 있었습니다. 회의록은 각자의 노트에, 결정은 메신저에, 자료는 드라이브 어딘가에. 나는 그것을 하나의 구조로 다시 지었습니다.
기록은 다섯 개의 데이터베이스로 묶었습니다. 프로젝트와 업무, 회의와 로그, 액션과 로드맵이 서로 연결되어, 흩어진 메모가 아니라 한 몸으로 움직이는 자료가 되었습니다. 그 위에 직접 만든 자동화 흐름 열두 개를 얹었습니다. 매일 밤 회의록이 세 줄로 요약되어 제자리에 쌓이고, 받은 메일이 정리되어 아카이브되며, 매주 산업 동향이 추려져 도착합니다. 팀이 일하는 방식을 담은 생활백서가 만들어지고, 반복되는 질문에 답하는 챗봇이 그 위에서 함께 돕니다.
여기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시스템의 두뇌가 어떤 멋진 도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두뇌는 ‘우리가 일을 어떻게 한다’는 운영의 규칙과, 그것을 쉬지 않고 돌리는 자동 엔진에 있습니다. 도구는 바뀌어도 그 구조는 남습니다. 그리고 AI가 만든 모든 기록에는 ‘AI작성’이라는 표시를 붙여, 사람의 검수가 반드시 한 번 개입하도록 했습니다. 자동화의 목적은 사람을 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 중요한 판단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디자인팀 업무 자동화 시스템, 2025–present · 서울아레나 경험기획실 디자인팀장 · Notion · n8n · Claude
한 팀에서 작동한 방식을, 회사 전체로 옮길 수 있을까. 이 질문이 다음 일이 되었습니다.
나는 디자인팀의 체계를 전사 표준의 원형으로 삼아, 여러 팀과 백 명에 가까운 규모로 확장하는 설계를 그렸습니다. 핵심은 도구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구조를 세 층으로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기록할지의 층, 우리가 일을 어떻게 한다는 규칙의 층, 그 규칙대로 일을 엮어 돌리는 엔진의 층. 이렇게 나누면 도구가 바뀌어도, 회사가 자라도, 같은 구조 위에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다만 나는 도구 도입을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AI가 참조할 수 있는 데이터의 구조, 무엇을 입력하고 무엇은 참고만 할지의 기준, 잘못된 답을 걸러내는 검수 절차를 먼저 세웠습니다.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일은 결국, 사람과 데이터와 신뢰의 순서를 먼저 정리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목표는 분명합니다. 서른 명의 조직이 삼백 명의 일을 해내는 것. 지금 그 설계를 실제 플랫폼으로 옮기는 중이고, 같은 사고를 디지털트윈 시뮬레이션이나 사내 시스템처럼 더 큰 그림으로도 넓혀 가고 있습니다.
전사 업무방식 전환(AX) 설계, 2026– · 서울아레나 경험기획실 디자인팀장 · 설계·추진 중
공간을 지을 때 나는 늘 같은 것을 물었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기억으로 남는가. 일하는 방식을 지을 때의 질문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일하고 싶은가, 그리고 그 방식이 우리를 어떤 조직으로 만드는가.
결국 내가 해 온 일은 하나였습니다. 무엇을 만들든, 그것이 오래 작동하고 다시 기억되도록 구조를 짓는 것. 다만 마지막에 그 대상이 공간도 브랜드도 아닌, 우리가 일하는 방식 자체가 되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