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지어지기 전에 질문으로 먼저 존재합니다. 무엇을 지을지보다, 그것이 누구의 기억으로 남을지를 나는 먼저 물었습니다. 형태는 늘 그다음의 일이었습니다.
여기 모은 장면들은 시간이 아니라 하나의 생각을 따라 놓았습니다. 의미가 형태보다 앞선다는 것.
하나의 공간을 두고도 사람마다 다른 것을 기억합니다. 관객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이름이 새겨진 계단을 밟고 들어선 순간을 기억하고, 운영자는 수만 명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퇴장의 동선을 기억하며, 스폰서는 자신의 브랜드가 팬의 하루 속에 스며든 장면을 기억합니다. 같은 건물이지만, 기억은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처음 이 일은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었습니다. 공간과 사인, 스카이박스와 라운지, 굿즈와 스태프복, 웹사이트와 앱, 운영 동선과 스폰서십이 저마다 다른 팀, 다른 일정, 다른 예산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관객과 파트너에게 그 조각들은 결국 하나의 장소 경험으로 도착합니다. 입장하며 읽은 사인의 말투와, 손에 든 굿즈 봉투의 감촉과, 공연 전 들른 창동 골목 식당의 인상은 그들의 머릿속에서 끝내 '서울아레나'라는 한 단어로 묶입니다.
그래서 각각을 잘 만드는 대신, 하나의 질문 아래 다시 모았습니다. 이 공간은 누구의 기억으로 남는가. 질문이 자리를 바꾸자 일의 성격도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만들 것은 따로 떨어진 결과물이 아니라, 같은 기억을 짓는 하나의 구조였습니다. 좋은 장면을 만드는 일에서, 그 장면이 오래 작동하고 다시 떠오르게 만드는 일로.
서울아레나 복합문화시설, 2025–present · 서울아레나 경험기획실 디자인팀장
기능의 집합체인 건물. 카카오의 첫 데이터센터는 처음부터 그 본질에 집중한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화려한 스킨과 발랄한 IP로 장식된 설계사의 제안서로 시작되었고, 이후 우리 팀에게 넘어왔습니다. 우리가 제안서를 받은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명확했습니다. 본연의 기능 외에 덧붙여진 모든 것을 걷어내는 것.
데이터센터에서 보안과 안정성은 선택 가능한 조건이 아니라, 뗄 수 없는 본질에 가깝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에서 카카오가 보여줘야 할 것은 귀여운 캐릭터나 노란빛으로 가득한 외피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캠퍼스 안에 위치한 데이터센터라는 특수성, 카카오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유와 연결의 가치, 그리고 그 가치와 긴장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는 보안과 안정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 그것이 이 프로젝트에서 우리 팀이 풀고자 한 핵심이었습니다.
지역과 학생들에게 열려 있는 공간을 품은 데이터센터. 동시에 보안을 결코 놓치지 않는 설계. 그리고 그 설계의 근간에는 기능이 곧 장식이 되는 디자인이 있어야 했습니다. 만약 친환경성이 중요하다면, 보기에 아름답지 않더라도 스킨은 태양광 패널이 되어야 합니다. 다소 투박해 보이더라도 숨기지 않는 것, 그 기능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생각한 카카오다운 방식이었습니다.
카카오 데이터센터 안산, 2020–2023 · 카카오 자산개발실 기획팀 수석디자이너 · 협업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다원ID&C, 스페이스올
일하는 방식이 달라지면, 공간도 같이 달라져야 합니다. 카카오가 자유로운 소통으로 움직이던 스타트업을 지나, 집중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조직으로 바뀌던 때였습니다. 사람이 늘고 일이 깊어지자, 모두가 한자리에서 떠들며 일하던 방식은 더 이상 맞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 변화를 배치의 원리로 옮겼습니다. 건물 가운데 두 개 층은 통째로 비워 카페와 캔틴, 라운지 같은 공용의 자리로 두었습니다. 모이는 일은 가운데로 모으고, 바깥과의 교류와 안의 소통이 서로 다른 결로 흐르게 했습니다. 업무 층마다 회의와 휴식의 자리는 안쪽에, 몰입하는 자리는 창가 바깥에 두어, 모임의 소리와 집중의 침묵이 부딪히지 않게 했습니다.
일곱 개 층은 저마다 다른 설계사와 시공사의 손을 거쳤습니다. 손이 바뀔수록 톤은 쉽게 흩어집니다. 그래서 층마다 표정은 달리하되, 건물 전체가 하나의 언어로 읽히도록 방향만은 끝까지 같은 손으로 붙잡았습니다.
카카오 오피스 리뉴얼, 2018–2020 · 카카오 브랜드센터 SPX 수석디자이너 · 협업 국보디자인, 다원앤컴퍼니, 백지디자인 외
제주의 마스터플랜을 그리며, 우리는 멋진 워케이션을 상상하는 대신 물었습니다. 카카오 직원이 정말로 이곳에서 일하고 쉰다면, 어떤 하루를 보낼까. 그래서 상상 대신 데이터를 펼쳤다. 카카오 직원들의 인적 구성과 직군별 데이터, 내부 설문과 기록을 통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구체적인 상상을 이어갔습니다. 직원들을 압축한 10명의 페르소나. 그들이 워케이션을 꿈꾸며 예약을 하는 순간부터, 워케이션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그 기억을 되새기는 순간까지를 무한히 쪼갠 세그먼트 속 여정의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