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도 성격이 있습니다. 무엇을 위한 곳인지가 정해지면, 그다음은 그곳이 사람을 어떤 표정으로 맞이할지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 표정을 마감재나 색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이 공간에서 사람이 어떤 시간을 보낼지를 먼저 정하고, 톤과 재료는 그 시간을 위해 골랐습니다. 여기 모은 네 곳은 표정이 저마다 다르지만, 만들어진 순서는 같습니다. 보이는 것을 정하기 전에, 살아질 시간을 먼저 정했습니다.
한남동의 그 땅은 더 크게 지을 수 있었습니다. 면적을 끝까지 채우고 사람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몰(mall)을 세우는 것이 상업적으로는 자연스러운 답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답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사운즈한남은 거대한 건물 하나가 아니라, 여러 채가 모인 동네로 읽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덩어리를 잘게 나누었습니다. 큰 매스를 쪼개 사이에 길을 내고, 건물마다 거리와 직접 얼굴을 맞대게 했습니다. 그 결과 1층의 가게들은 어두운 내부 복도에 갇히는 대신, 모두 길에 면한 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쇼핑몰로 들어가는 대신, 골목을 걷듯 가게를 하나씩 만났습니다.
이것은 감성만의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길에 면한 가게가 늘수록 점포 하나하나의 얼굴과 접근성이 분명해졌고, 그것은 곧 임대의 가치로 돌아왔습니다. 동네라는 인상이 동시에 사업적으로도 옳은 구조였던 셈입니다. 그때 우리는 배웠습니다. 더 많이 짓는 것보다, 무엇을 비우고 어떻게 쪼갤지가 더 오래 남는 성격을 만든다는 것을.
사운즈한남 복합개발, 2014–2018 · JOH & Company SPX 책임디자이너 · 협업 시상현건축사사무소, 이안R&C 외
사운즈한남의 메인 출입구로 들어서면, 4개 층 높이의 보이드 너머로 커튼월에 면한 계단이 정면으로 보입니다. 이 건물의 첫인상이 곧 그 계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기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계단은 곡선투성이였습니다. 도면으로 옮기는 것조차 어려울 만큼 면이 휘어 있었고, 손과 몸이 닿는 곳은 빠짐없이 부드럽게 다듬었습니다. 게다가 새로 세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미 있던 철골 계단 위에, 그 구조를 살린 채 전혀 다른 표정을 덧씌워야 했습니다.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도 그 계단은 화려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곡면이 얼마나 까다로웠는지, 아래 철골이 어떻게 숨어 있는지 모른 채 손잡이를 짚고 오릅니다. 다만 손바닥에 닿는 면이 어딘가 매끄럽다고 느낄 뿐입니다. 공간의 표정은 그런 데서 만들어집니다. 눈에 띄는 한 장면이 아니라, 알아채지 못한 채 몸이 먼저 닿는 자리에서.
스틸북스 한남, 2017 · JOH & Company SPX 책임디자이너 · 협업 씨노플랜
사운즈스테이는 마을회관으로 쓰이던 건물을 직원 숙소로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예산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돈을 어디에 쓸지부터 정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마감은 최소로 줄이고, 공조와 상수도처럼 며칠을 지내는 사람의 몸에 직접 닿는 곳에 돈을 들였습니다.
가장 크게 바꾼 것은 들어오는 길이었습니다. 원래는 앞마당 정원을 가로질러 건물 정면으로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입구를 건물 뒤로 돌렸습니다. 사람은 뒤로 들어와 거실을 지나, 마지막에야 정원을 마주합니다. 들어오는 순서를 뒤집자 머무는 리듬이 바뀌었습니다. 정원이 스쳐 지나는 풍경에서, 하루의 끝에 앉아 바라보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나머지는 팀 전체의 발품이었습니다. 주방 후드와 조명, 이불과 베개, 옷걸이 하나까지 직접 고르고 사서 놓았습니다. 결국 그 집의 성격은 비싼 마감이 아니라, 손으로 고른 물건들과 다시 짜인 동선에서 나왔습니다.
사운즈스테이 속초, 2016–2017 · JOH & Company SPX 선임디자이너 · 협업 크라제엠지(설계·시공)
제주의 그 호텔을 두고 처음 들어온 요구는 분명했습니다. 다 갈아엎는 것. 30년 된 건물을 지우고 새것으로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다르게 보았습니다. 30년의 시간을 버리는 대신, 그 시간을 새 그릇에 다시 담기로 했습니다.